칠레 와인, 그 진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몬테스 알파 버티컬 테이스팅
2009년 3월 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는 칠레의 와이너리 십여 군데를 돌아다니며 와인메이커들을 만나고 그들이 만드는 거의 대부분의 와인을 시음했던 적이 있다. 매일 세 군데의 와이너리들을 다니며 하루에 50여 종이 넘는 와인을 시음하다 보면, 시음으로 인해 치아가 시린 것은 물론이고 양조장과 포도밭을 돌아다니는 것 또한 (특히 포도밭의 경사가 심한 경우는 더욱 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이 힘들었던 것보다, 오히려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사실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한송이 한송이 포도를 수확하는 농부들, 직접 만든 비료라며 손으로 퍼서 보여주는 와인메이커, 병입되지도 않은 숙성 중인 와인들을 따라 주며 “어때요?”하고 묻는기대를 담은목소리, 살랑살랑 불다 금새 사라지는 바람마저도 포도나무에는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가슴. 이런 기억들에 대한 여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한국에서 칠레의 와인메이커들을 만날 때면 마치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설렌다.
이러한 설렘은 며칠 전 몬테스(Montes)의 회장 아우렐리오 몬테스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몬테스 알파의 8가지 빈티지 와인을 버티컬 테이스팅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는 이 시음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를 만나자 문득 작년에 방문했던 몬테스 와이너리와, 한창 수확 중인 포도밭을 둘러보고 돌아온 그의 카우보이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칠레 내에서만 다섯 군데의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고 총 재배면적이 600헥타르에 달하며 생산하는 와인의 95%를 전세계 60개국에 수출하는 몬테스의 회장이, 여전히 수확기에는 청바지에 남방 차림으로 포도밭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점검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었다.
이미 수 개의 칠레 와이너리들을 돌아보고 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몬테스 와이너리는 먼발치에서 보더라도 무언가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산자락에 낮고 편편하게 지어진 와이너리는 자연 속에서 튀지 않으려는 듯 고상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주위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물은 와이너리 입구에서부터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물을 따라가다 보면 2층의 작은 샘으로 이어진다(위 사진). 풍수지리에 따라 건물의 정 가운데 지어진 이 샘에는 몬테스 와이너리의 에너지가 집중된다고 믿어지며, 몬테스는 이러한 에너지가 와인에까지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는다고 말해 주었다.
와이너리를 둘러싼 포도밭 중에서 산자락의 경사면에 일궈진 곳은, 발 딛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경사가 급했다. 원래는 나무가 우거지고 돌들이 많았던 이 경사면을 몬테스는 포도나무가 최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 확신했고,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던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와 돌들을 드러내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지금 이 경사면의 포도밭에서는 몬테스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포도들이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포도밭의 가장 높은 곳에는 카르메네르와 시라를, 중간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가장 아래 부분에는 메를로를 재배한다.

최근 방한한 몬테스 회장(위 사진)과 함께 한 버티컬 테이스팅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여덟 개 빈티지의 몬테스 알파로 구성되었다. 1999부터 2003, 2006부터 2008 빈티지의 몬테스 알파 테이스팅은, 시음자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주최자인 몬테스 회장에게 있어서도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그는 이 자리를 빌어, 칠레 와인이 대체로 숙성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칠레 와인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기다린다면 수년 후 혹은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좋은 맛을 제공할 수 있는 숙성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확신을 증명해 보이듯, 10년 전에 만들어졌을 1999 빈티지의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과일의 풍미가 성숙한 상태로 여전히 살아있었고, 신선한 붉은 베리류의 향이 은은하고 기분좋게 후각을 자극했다. 또한 옅은 시나몬과 시가의 부케는 와인에 복합미를 더해주었고, 여러 해 동안 완숙해진 타닌은 깔끔하고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하였다.
2000부터 2003 빈티지의 와인들은 공통적으로 타닌이 숙성되어 가면서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였고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는데, 몬테스 회장은 이 와인들이 향후 4-5년 사이에 마시기 좋은 상태의 와인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2006부터 2008 빈티지의 와인들은 어린 와인다운 강건한 타닌이 느껴졌지만 거칠지 않았고, 생기있고 신선하며 좋은 산도를 보유하여 수년 뒤의 갖춰질 풍미가 기대되었다.
참가자들과 함께 여덟 빈티지의 와인들에 대한 테이스팅을 마친 후 몬테스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칠레에서는 과숙한(over-ripened) 포도로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방금 시음한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만 보더라도, 어느 하나 밸런스가 무너진 와인은 찾을 수 없다. 이들 와인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깨끗한 타닌을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품질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와인들의 타닌은 잘 익어서 거칠지 않고 부드러우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음식과 매칭하기에 좋다.”
사실 그 동안, 와인애호가들에게 칠레 와인의 숙성력에 대해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와인생산자들과 합작을 통하여 생산되었건 혹은 긴 숙성력을 자랑하는 유명한 와인의 스타일을 벤치마킹 했던 간에, 칠레 와인은 길어도 십 년 내에는 마셔야 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음회를 통해 아우렐리오 몬테스가 보여준 것은, 칠레 와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진보는 몬테스와 더불어 젊은 칠레의 와인생산자들에 의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value for money’라는 수식어는 마치 칠레 와인을 적절히 묘사하는 유일한 표현인 양 사용되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이보다 더 매혹적인 홍보 문구는 없겠지만, 칠레 와인 생산자들이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자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감은, 마시는 행위에 “가치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더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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