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주 Mariage, 오감의 조화



글쓴이 정휘웅(네이버 와인카페 운영자)



“캬, 죽인다” 소주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킨 다음 내뱉는 한 마디이다. 와인을 마시고 난 다음에는 “캬, 죽인다” 하면 좀 어색할까? 어떻게 보면 좀 어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주만큼 이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와인에서는 마리아주(Mariage)라고 부른다. 다만 위 경우는 말과 술의 마리아주인 셈이다.

대개 소주에는 삼겹살, 동동주에는 파전이 어울린다 한다. 하지만 파전에 어울리는 또 하나의 마리아주가 있으니 바로 “비 오는 날”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마리아주는 오감을 통틀어 다가온다. 그렇다면 와인에 있어서 마리아주는 어떨까? 와인에 있어서는 유독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많이 이야기한다. 무릇 모든 술이 다 이 궁합이 맞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와인만큼 이것 저것 따지는 술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음식연구가나 요리사들은 어떤 지역의 와인은 무엇과 마셔야 하며 어떤 와인은 언제 내어야 한다든지, 그리고 어떤 와인을 언제 마시면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논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가 까다로운 것은 와인이 음식과 함께 입에 들어가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소주나 맥주, 혹은 증류주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데, 이들이 음식과 같이 들어가면 서로가 부딪히거나 이점을 살리지 못한다. 그리고 음식의 풍미를 강화한다기보다는 느끼하거나 나쁜 느낌을 제거하기 위해서 마시는 경우도 있다. 삼겹살 한 점 먹기 전에 소주 반 잔 들이키고, 고기 한 점 먹은 다음 다시 소주를 마신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 “캬, 죽인다” 이 네 박자가 궁합이 맞아서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얼굴도 빨개진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몸에서 나는 소주의 알코올 냄새가 남에게 실례가 되든 말든, 입 안에 “캬~”하는 알코올 향기를 머금고 간다.

이런 문화가 있어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리아주를 경험할 때 대개 음식을 씹어서 삼키고 난 후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즉, 와인 따로 음식 따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자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과 한식의 마리아주 부분에서, 각각의 음식을 먹고 난 다음 다시 와인을 먹는 방식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와인은 음식과 함께 들어가는 조화의 술이기 때문이다. 즉 소주와 맥주가 시차의 조화를 논하는 술이라면 와인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술이다. 그래서 필자는 와인과 한식의 조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와인을 소주처럼 먹지 말고 와인처럼 먹어보라 한다. “와인을 와인처럼 먹어보라”는 것은 음식과 와인이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잘 가는 한식당이 있다. 그 식당의 아롱사태 편육은 간장과 아롱사태 편육, 부추 무침에 깻잎이 나온다. 이들을 하나로 잘 뭉쳐서 입에 넣고 약간 달콤한 카비넷이나 슈페트레제 같은 독일 리슬링 와인을 한 모금 같이 머금어보자. 그런 다음 촉감을 느끼며 잘 씹어 보자. 깻잎의 강한 향이나 매운 맛이 리슬링의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와 완벽한 조화를 보인다. 매운 한식 요리에는 피노 누아도 의외의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에 대해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논하기 이전에 모든 것에 대한 조화를 생각 해 보자. 와인과 음식의 조화 역시 당시의 상황, 가지고 있던 생각, 느낌,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가 되고 온전함이 된다. 그래서 와인은 오늘 밤에도 천 만 가지 이상의 마리아주를 연출하고, 소주도 맥주도 역시 천 만 가지 마리아주를 만들어 낸다. 오늘의 회포를 씻어내거나, 중요한 사업적인 목적을 달성하거나, 아니면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거나, 이러나 저러나 모든 것은 다 사람과, 음식과, 술,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오묘한 조화이다. 오늘 저녁도 역시 그 오묘한 조화를 하나 더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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