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어느 부르고뉴 와인메이커의 수확 일기




글 박재화 ㅣ 사진제공 와인북스


비록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싸늘하긴 하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포도가 익어가는 언덕을 비추고 있어 콧노래가 절로 나는 아침이다.

포도 수확을 코앞에 둔 지금, 오늘 내일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오늘 같은 날씨만 15여일 계속된다면 올 농사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텐데…

9월 22일부터 포도 수확을 하겠다는 곳이 많은 편이다. 더 익기를 기다리다가 비를 만나느니 비 오기 전에 수확하는 편이 더 좋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물론 9월 초부터 지금까지 포도 수확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놓지 않고 움직여왔다. 간혹 뿌리는 반갑잖은 비 때문에 포도에 곰팡이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나무 잎을 따주고, 심지어 포도가 많이 달려 익지 않은 포도 나무는 포도 제거도 주저 없이 해버렸다. 포도를 솎아 주는 작업은 일반적으로 베레종(포도열매가 익기 시작하면서 색이 변하는 단계)이 시작되기 전에 하지만, 수확을 한 달 앞두었을 때 하는 것은 포도가 익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예년에 비해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포도나무들이 많이 얼어 부르고뉴 전체 생산량이 20-30% 줄었는데 수확 전에 또 포도를 솎아주니 2010의 생산량은 2009년에 비해 적어도 30-40% 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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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까지 올해의 날씨를 간략하게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6월 중순까지도 긴 소매 옷을 입고 다녔을 정도로 겨울이 너무 길었다. 봄이란 놈은 이름값을 못하고 멀어졌지만 새싹은 용케도 텄다. 날씨가 요상하다 보니 포도나무들도 꽃을 늦게 틔웠다. 일반적으로 5월 중순에 꽃을 피우고 일주일 동안에 수분이 맺히건만... 올 해는 6월 초에 꽃이 피어 중순까지 불규칙적으로 수분이 되었다. 빨리 되는 놈은 빨리 되고 그렇지 않은 꽃은 10일 정도 간격 차가 있었다. 이것은 포도가 성장하는 시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다 6월 말이 되니 갑자기 여름이 밀고 들어왔다. 쏟아지는 햇볕에 포도나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쭉쭉 성장하면서 한없이 늘어트렸고, 비록 땀방울이 비오듯 얼굴을 타고 내렸지만 그 햇볕을 사람들도 나눠 누렸다. 뜨겁고 건조하다 싶으면 한 두 번 내린 빗물로 포도는 7월 한달 빠르게 성장하여 거의 예년의 포도 송이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졌다. 농부들은 날씨가 이대로만 지속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8월에 들면서 날씨의 변화는 농부들의 마음을 졸이기 시작하였다. 간혹 7월 같은 맹더위가 며칠 계속되었으면 할 정도로 그 열기가 그리웠다. 선선한 날씨가 자주 오는 바람에 굳이 일을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고 여름휴가에 대한 욕구조차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햇볕이 쏟아지던 7월에는 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뇌를 졸라대는 통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8월은 농부들의 가슴을 애태웠다.

오늘의 아침 온도는 10도 정도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햇볕도 나고 비도 오지 않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날씨가 추워지면 포도 나무 자체가 과일이나 뿌리에 당분을 더 보내 비축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는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자연 조건이 되겠다.
그러니 제발 비만 오지 않기를…


2010, 9월 15일, Gevrey-Chambertin에서



글쓴이 _ 박재화(프랑스 부르고뉴의 루뒤몽 와인메이커)
저 서 _ 어느날 부르고뉴 와인 한잔이...(2010)
번역서 _ 부르고뉴 와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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