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레드 와인을 압도했던 화이트 와인 소비는, 1990년대 중반 “레드 와인을 마시면 심장병 발병률이 낮다”는 프렌치 패러독스가 확산되자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대형마트의 화이트 와인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레드 와인 매출 신장률을 상회하는 등, 화이트 와인의 인기가 다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닭고기나 해산물 등 흰 살 고기로 만든 요리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레드 와인보다는 이런 요리와 더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와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선호하는 가볍고 신선한 화이트 와인의 인기도 더불어 높아져가고 있다. 또한 한국 음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에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와인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이러한 인기 상승에 한몫 하고 있다. 실제로 나물,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 구운 생선 등의 해산물 요리같이 풍미가 강하지 않은 담백한 음식이 주를 이루는 한식에는, 산미가 있고 신선하며 청량한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면 좋다.



샤르도네(Chardonnay)

샤르도네는 매우 뛰어난 적응력 덕분에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며, 그만큼 생산량 또한 많아서 ‘ABC(Anything But Chardonnay, 샤르도네만 빼고 뭐든지)’라는 슬로건이 생길 정도이다. 샤르도네 와인은 바닐라, 버터, 사과, 열대 과일, 레몬, 파인애플 같은 매력적인 풍미를 지니며, 크림처럼 풍성하며 넘칠 듯한 질감을 가진다. 모든 샤르도네가 우아하게 숙성하는 것은 아니며 대다수는 신선할 때 마시는 것이 최상이다. 특히 더운 기후 지역 와인일수록 빨리 마시는 것이 낫다.

프랑스의 명품 와인 샤블리 같은 경우 상쾌하고 파삭하면서 가벼운 반면, 뫼르소와 몽라셰 같은 부르고뉴 지역이나 신세계 지역의 훌륭한 화이트 와인들은 풍성하고 화려하다. 특히 부르고뉴의 일등급 와인과 신세계의 정상급 와인은 10년 이상 숙성시킬 경우 견과류, 꿀향을 지닌 섬세한 복합미를 연출한다.
 

리슬링(Riesling)

와인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품 있고 독특한 청포도 품종으로 리슬링을 꼽는다. 리슬링 와인은 아주 드라이한 것에서 농축된 달콤한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있으며, 양조 과정에서 오크를 활용하지 않는다. 뛰어난 리슬링 와인은 막 솟아오르는 산도와 상당한 풍미를 지닌다. 리슬링의 정제된 구조감은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신선하고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멜론의 풍미로 보완되며, 때로는 산속 개울의 돌 위를 흐르는 물맛처럼 강한 미네랄의 특징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우아하고 정교한 리슬링은 서늘하거나 추운 기후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독일,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 오스트리아 북부, 미국 뉴욕의 북부 등이 그러하다. 캘리포니아같이 약간 따뜻한 기후 지역에서 생산된 리슬링은 대개 더 부드럽고, 약간 더 풍성하며, 좀 더 산만한 풍미를 내곤 한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버터 같은 부드러운 느낌의 샤르도네와는 반대로, 소비뇽 블랑은 깔끔하고 유연하며 허브 향이 나고 날카로운 산도를 지닌다. 소비뇽은 프랑스어로 Sauvage(야생, wild)에서 유래하는데, 잘 길들여진 맛이 아니라 짚, 건초, 목초, 초원, 녹차, 부싯돌의 풍미가 놀라운 힘과 더불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이 품종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어떤 소비뇽 블랑은 고양이 오줌이라고 묘사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하는데, 와인의 품질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이런 표현은 보통 긍정적인 속성으로 간주된다.

가장 뛰어난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와 뉴질랜드에서 생산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오스트리아이며, 프랑스의 보르도에서는 거의 모든 화이트 와인을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섞어 만든다.
 

세미용(Semillon)

리슬링처럼 세미용 역시 완전히 드라이한 것에서부터 감미롭고 달콤한 와인까지 생산된다. 드라이한 세미용 와인은 가볍고 연약하며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는 반면, 달콤한 세미용 와인은 묵직하고 감미로우며 오크 통에서 발효를 거친다.

프랑스 보르도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미용을 종종 소비뇽 블랑과 섞어 와인을 만드는데, 산도가 강한 소비뇽 블랑과 둥그스름한 느낌의 세미용은 정반대의 특징을 지니면서 서로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보르도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소테른 지역의 스위트 와인은 모두 세미용을 주축으로 해서 소비뇽 블랑을 소량 섞어 만든다. 보르도 외에 세미용으로 유명한 곳은 호주인데, 대다수는 순수 세미용 와인이지만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과 블렌딩하기도 한다.



슈냉 블랑(Chenin Blanc)

슈냉 블랑은 매우 드라이한 것부터 미디엄 스위트, 귀부균의 영향을 받은 리큐어까지 굉장히 광범위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점에서 리슬링을 닮았다고도 볼 수 있다. 때로 슈냉 블랑은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데에도 쓰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생기 넘치는 슈냉 블랑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에서 생산되는데, 완전히 드라이한 것에서 아주 달콤한 것까지 당도가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 아주 달콤한 슈냉 블랑은 경이로운 감동마저 일으킨다. 슈냉 블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스틴Stee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슈냉 블랑은 대체로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정도의 수준으로 만든다.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분홍빛 껍질을 가진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짙은 노란색의 와인을 만들며, 장미 꽃잎, 통조림 리치, 사향, 터키 과자 등의 향을 풍긴다. 이렇게 다양한 과일의 풍미를 때로는 달콤함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게부르츠트라미너는 대부분 매우 드라이하다. ‘Gewürz’는 독일어로 향신료를 뜻하는데,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향기롭고 풍미가 자유분방하고 대담하며 활기차기 때문에 종종 ‘스파이시하다’라고 묘사된다. 게부르츠트라미너의 향기로운 아로마와 외향적인 스타일은 쉽게 인지되기 때문에 와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호감을 주는 품종이다.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깜짝 놀랄 만큼 드라이한 게부르츠트라미너는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된다. 알자스처럼 추운 기후의 독일 역시 맛 좋은 와인을 만들며,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에서도 이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피노 그리(Pinot Gris)

피노 그리(또는 피노 그리지오, Pinot Grigio)는 피노 누아의 돌연변이종이며, 푸르스름한 은색에서 연한 자줏빛이 도는 분홍색 그리고 회색빛 도는 노란색 등의 빛깔을 띤다. 다시 말해 이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색깔이 은은하면서도 다양하다. 대체로 피노 그리 와인은 높지 않은 산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생기를 가지고 있는데, 포도가 어디에서 재배되느냐에 따라 현저히 다른 맛이 난다.

가장 인상적인 스타일의 피노 그리 와인은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되며, 웅장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스파이시하다.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는 대개 단순하고 가벼우며 파삭파삭한 와인을 만든다. 미국 오리건에서 생산되는 고급 피노 그리는 복숭아와 향신료 케이크의 풍미가 있으며, 캘리포니아의 피노 그리는 파삭파삭하고 신선하며 때로는 후추 같은 쌉쌀한 맛이 느껴진다.
 

비오니에(Viognier)

비오니에는 아주 훌륭한 품종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가장 진귀한 프랑스 청포도 품종에 속한다(이 품종의 본고장인 프랑스 북부 론, 콩드리유에서 조차 귀한 포도 품종이다).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매우 높고 산도는 낮으며 실크 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숭아와 살구 같은 과일 향에서 비롯된 섬세함과, 인동덩굴의 매력적인 풍미, 사향냄새 나는 과일 맛, 원숙한 보디감을 보여준다.

비오니에는 199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랑그도크루시용 지방과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 재배량이 증가하였다. 자연적으로 소출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향기로움과 밀도를 얻기 위해서는 아주 잘 익어야 하는데, 이는 비오니에 와인이 결코 저렴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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